본문 바로가기
나는,, 얼은이니까,,

갑상선암은 착한 암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by 능이버섯 2022. 3. 22.
반응형

어릴 때부터 뚱뚱했지만 몇 년 전 부쩍 살이 많이 쪘다.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인한 것 같아서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사실 그렇다고 해도 별 거 아닌 사안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그 전까지는 아 조금만 살 빼면 예쁠 것 같아~ 소리 듣는 적당히 건강한 돼지였는데 이제는 어떡하니... 소리 듣는 건강해 보이지도 않는 돼지가 되어 버린 내가 많이 걱정되셨는지 엄마는 건강검진을 받아보라고 했다.

그 때 재직중이던 회사는 2년에 1번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해줬는데 그 해는 건강검진 대상자가 아니었던지라 못 받았던 참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골라 개인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건강검진을 받고 결과를 받았는데 갑상선 쪽에 뭐가 보인다고 병원와서 세침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아마 별 거 아닐 텐데 혹시 몰라서 하는 검사니까 걱정하지 말고 검사 받아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셔서 나는 정말로 걱정을 안 했다.

검사 받는데 별로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 때 무슨 약속이 있어서 친구랑 같이 갔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리고 셀프로 목을 조르는 것처럼 하면서 30분 넘게 지혈을 하고 있어야 되는 자세가 우스꽝스러워서 웃었다.

 

일주일 쯤 지난 후에 검사결과 들으러 갔다. 별 거 아닐 거라고 해서 나는 진짜 별 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검사 결과를 보던 의사선생님이 잠시 뜸을 들이시면서 보호자 없이 혼자 오셨나요? 라고 묻는 게 아닌가. 왜 물어보시지 생각하면서 네 혼자 왔는데용 대답하고 나서 아.. 하고 왜 혼자 왔냐고 물어봤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암이라고 했다. 살면서 내가 암에 걸릴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가족력도 없다. 내가 왜 암에 걸렸는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의사선생님이 뭐라고 계속 말씀을 하셨는데 솔직히 하나도 귀에 안 들어왔고 그냥 앉아있었더니 옆에 서계시던 간호사선생님이 날 일으켜서는 CT 찍고 오라고 하셨다.

아 뭐야 나 아만자네 ㅋㅋ 뭐야 ㅋㅋㅋ 아 ㅋㅋㅋ 이러면서 헛웃음을 지으며 CT를 찍으러 갔다. CT 찍고 나서 검사실 밖에 있는 의자에 멍하게 앉아있었다. 진짜인가 현실감이 없었다. 요새 갑상선암은 암 취급도 안 해준다는데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눈물이 났다. 한 번 눈물이 나니까 멈출 수 없었다. 방울방울 눈물 흘리며 흐느끼다가 나중에는 거의 오열했다.

병원에서 우는 사람이 흔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모습도 아닐 테니 다들 무심하게 내 곁을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옆에 어떤 아주머니가 앉으시더니 내 손도 잡아주시고 어깨도 토닥거리시면서 무슨 일이냐고 여쭤봐주셨다. 올해 서른살 됐는데 갑상선암이라고 그래서요.. 하면서 훌쩍훌쩍 거렸더니 홍삼캔디를 꺼내서 먹으라고 주시더니 당신 따님도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했는데 지금은 건강하시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위로를 받고 있을 때, 어떤 병원 직원이 왜 아직도 여기 계시냐고 검사 끝났으면 올라가셔야 한다고 해서 아주머니께 감사하다고 인사 드리고 다시 의사선생님한테 갔다. 우느라 시야가 잔뜩 흐려져서 그 아주머니 얼굴도 기억 안 나고 경황이 없어서 성함을 여쭤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그 때 날 달래준 그 분을 생각하면 항상 감사하다.

어쨌든 젊으니까 암도 빨리 자라니까 최대한 빨리 수술하는 게 좋겠다고 이것저것 안내해주셨다. 운이 좋았다면 좋았던 것이 나는 그냥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간 거였는데 마침 갑상선전문센터가 있는 병원이었다. 그래서 더 자세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 하루 보내기 싫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갔는데, 멍 때리면서 앉아있고 울고 그러느라 집에 오니 벌써 오후 4시가 다 되어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했다. 엄마는 밖이었던 것 같다. 주변이 시끄러웠다. 엄마.. 나 암이래. 얘기했더니 어? 무슨 소리야 어? 아니.. 이따 다시 얘기해. 그러고 전화를 끊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날 엄마 아빠랑 친한 분들이랑 부부동반으로 놀러나가는 길이었는데 내 전화를 받고 엄마가 너무 우셔서 취소하고 집에 가셨다고 한다.

이 날은 2016년 1월 2일 토요일이었다. 집에 와서 멍하게 있는데 우울한 생각이 자꾸 드는 게 싫어서 TV를 켰다. 평소에 무한도전을 열심히 챙겨보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 날은 생방송을 챙겨봤다. 이 날 무한도전은 부산에서 경찰이랑 연계해서 했던 추격전이었는데 광희가 쯔왑쯔왑 시루떡 먹으면서 살아남으려고 아둥바둥 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던 회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오늘 암환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열심히 광희를 응원했다. 그 후부터는 광희만 보면 기분이 좋아졌고 암투병 할 때 항상 광희 영상을 봤다. 가끔 나는 우울할 땐 광희 영상을 봐... 이런 제목으로 글이나 영상 올라오는 걸 보는데.. 진짜로 내가 그랬다. 광희 아니었으면 못 버텼을 것 같아. 근데 지나간 예능 다시 보기 하면서 보냈더니 시간이 후루룩 지나가서 우울함 느낄 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광희를 좋아한다. 갑자기 광희팬 된 얘기지만.. 아무튼 그랬다. 내가 암환자 될 줄 몰랐는데 암환자가 됐다.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했을 때 제일 많이 들은 얘기는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더라, 감기 같은 거라더라 괜찮을 거야 라는 위로였다. 나도 안다 위로로 하는 말인 거. 근데 진짜 1도 위로가 되지 않았고 짜증났다. 감기 같은 거면 너나 걸리지 그래 하는 삐딱함이 올라올 때도 있었다. 내 감정 컨트롤 못하고 갑분싸 만들까봐 처음에는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 자체를 숨긴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냥 말하곤 한다. 지금은 5년 지나서 완치 판정을 받기도 했고 예전처럼 삐딱하게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고통스럽지도 않아서 그냥 아 그 땐 그랬거든여 하고 지나가는 에피소드로 얘기할 수 있게 됐다.

근데 언제 어떻게 어디서 재발할지 모른다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느낌이다. 게다가 나 같은 경우 다발성으로 전이될 위험이 너무 커서 전절제 한 상태라 평생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으며 살아야 한다. 환자인 내가 싫어서 일주일 넘게 약을 안 먹으면서 버텨본 적 있는데 온 몸이 정말 퉁퉁 부어서 도저히 안 먹을 수 없었다. 컨디션 관리에 신경쓰지 않으면 금방 지쳐서 아무것도 못한다. 수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회사에 오래 앉아있기가 힘들어 오후 시간에는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수술한 병원에서 수술한 지인은 수술 중 성대를 다쳐서 목소리가 안 나와서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다. 완치 판정 받은 것 자체는 기쁜데 이제는 추적검사하러 갈 때 5년이 지나서 중증환자 혜택을 받을 수 없어서 내 돈 다 내고 검사 받아야 하는데 초음파, 채혈 다 하면 6개월에 한 번 30만원+@ 씩 나가는데 생각보다 많이 부담스럽다. 물론 이런 것까지 디테일하게 얘기하면 정말로 숙연해지기 때문에 적당히 암 걸렸었지만 지금은 꿩강합니다!!! 정도만 얘기한다.

세상에 착한 암이 어디 있을까. 치사율이 낮고 예후가 좋고 생존율이 높다고 해서 갑상선암에 걸린 사람이 안 아픈 건 아닌데. 착한 암 같은 소리 안 하면 좋겠다.

반응형

댓글